김 영 민
Kim, Youngmin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07 Korea center, 자카르타
2016 갤러리지오, 인천
그룹전
2016 <얼굴전> 갤러리소밥, 양평
2016 <소밥철암전> 갤러리소밥, 양평
2016 <다순구미이야기> 조선내화, 목포
2016 <아트홀릭> 에이블파인아트서울, 서울
2016 <인천현대미술흐름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인천
류시완 개인전
默巖의 方外之遊
- 류시완의 첫 번째 전시에 부쳐 -
석 용 진(서예가, 화가)
6~7년쯤 어느 날인가 아침에 그를 만나니 밤새 그린 볼펜화 한 점을 내보인다.
심한 마음의 동요가 있던 시기에 대구의 모 여관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그린 것이었다. 어떠냐는 그의 질문에 순간
대답을 잊었다. 수없이 많은 선들이 중첩되고 또 중첩되어 드러내는 화폭은 순간 전율을 느끼게 만들었다. 몇 시간이고 그
은 선위에 긋고 또 그은 선들은 선이 아니라 마치 가는 철근들로 이루어진 견고하고 굳건한 하나의 조형물로 느껴지는 것
이었다. 순간 인간은 참으로 위대하다고 또 한번 깨달았다. 그림에 대한 소질이라고는 한 점 없는 인간이 집중하고 또 집중
하여 그은 무수한 선들은 이미 화법이니 화풍이니 하는 수많은 방법과 단어 밖에 존재하였다. 그 그림을 보면서 나는 인간
이 어떻게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을까 어쩌면 역사 속의 수 많은 대가들도 이와 유사한 정신의 상태를 끊임없
이 겪지 않았을까…… 이것은 성 에너지의 전환일까? 열정의 소산일까? 광기의 부산물인가? 아니면 인간 모두 가지고 있
는 드러나지 않은 역량인가?
잠깐의 시간의 흐르고 난 다음 나의 대답은 "좋다" 라는 한마디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스케치북과 여러 화구들을 챙겨주
면서 시간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리고 보탠 말이 누군가에게 배우기보다 이 그림처럼 집중해서 자신의 속에
있는 어떤 것들을 끄집어 내는데 주력하라고 했다. 그의 그림에 대한 첫인상은 한 인간의 집중에 대한 전율이었다.
끊임없이 흔들린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산호초 비취 빛 바다의 고요함이 있는가 하면
검푸른 폭풍이 뒤 따르는 파도 위에 불안하게 떠 있는 쪽배 한 척
새벽닭이 울기까지 수 많은 번민과 갈등 속에 절망하는 베드로
노을 지는 바닷가에 위태롭게 기울어진 외로운 등대
붉은 불길인지 피의 폭풍인지 모를 배경 속에 강렬한 흰빛을 발하는 델타
악마군단을 연상하게 하는 붉은 십자가 그러다가 문득 환희로 가득 찬 푸른빛 공기 속에 떠오르는 기도하는 인물들
자애로운 성모상 앞에 놓여진 수많은 작은 소망들
때때로 오르골로 만들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여인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가 하면
오랜 벗으로서 형으로서 장도를 기원하며 默巖의 규범 밖의 놀이에 한마디를 보탠다.
2016. 12
大邱의 無別處에서
-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 1회 기부전 (남아공 성 안드레아 김대건 성당, 총40점)
- 현대미술흐름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 광복 70주년 33인 초대전 (갤러리지오)
- 인천현대미술흐름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 인천미술전람회 특선, 특별상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 인천환경미술협회전 (연수갤러리)
- 인사미술대전 특별상
- 소통아트캘린더전 (갤러리지오)
- 현 환경미술협회 회원, LG전자 재직 중
- 오뉴월 감기
나의 그림 여정은 mentor 의 한마디 말씀으로 불현듯 시작되었다.
"글씨보다 그림이 나으니 그림을 그려 보아라"
그리고 사다 주신 스케치북 한 권과 파스텔 한 박스……
그렇게 나의 그림은 불혹의 나이를 넘겨 늦깎이로 시작되었다.
- 재창조
아름다움의 대상은 오래 전부터 또는 스러져가며 거기 있었을지라도
내 손으로 재창조하고 싶었다. 다만 아름다움 그 자체를 어떤 형태로든 재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아름다움과 소유를 향한
나의 근원과 무의식의 반응을 욕망이라는 형태로 가공 재생산할 것인가 하는 것이 늘 그림의 모티브가 되었고 갈림길이
되기도 했다.
- 미래
아직도 갈림길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그리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지만 아직 너무나 낯설기도 하다.
내 그림의 "불안정성"의 이유이기도 하고 바로 그것 때문에 아직도 "꿈틀거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감사
오늘 내 전시의 단초가 되어준 일사 석용진 형님과 그것을 길러 준 고진오 선생님께 항상 감사의 염을 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