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원더랜드 인천展을 개최하면서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로 뒤로 하고 시간은 어느덧 7월 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최고조에 이르는 이 계절에 인천미술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2018 원더랜드 인천展을 기획하고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인천 미술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전시가 될 것입니다. 전시의 취지에 맞는 작가를 엄선하느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습니다. 미술은 당대의 현실을 드러내는 양식의 하나라는 어떤 젊은 평론가의 말에 동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동의에는 전제 조건이 붙습니다. 미술은 당대의 현실을 드러내는 양식인 동시에 당대의 현실을 넘어서는 양식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현실의 수평적 차원만이 아니라 수직적 차원에도 관심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현실의 수직적 차원에 대한 고려 없이는 수평적 차원 역시 올바르게 파악되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예술가들은 일단 잠수부처럼, 깊숙이 심연 속으로, 내려가야 할 것입니다. 세계의 심장부까지, 그 본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지하 작업을 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예술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예술이야말로 인간이 내재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발현물이기 때문입니다. 고화질 테레비전, DVD 기술, 인터넷망의 폭증, 현실 이상의 초현실을 엮어 내는 가상현실 기술 등의 발전은 지구촌 전체의 사람들을 남김없이 공통된 하나의 의사소통 공간으로 불러내려 합니다. 이제 예술은 약간의 기발한 창의성을 선구적인 양 미끼로 내세우면서 대중의 흥미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예술 상황은 이런 방향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예술이란 모호하고 난감한 대상입니다. 작가들이 작업을 한다는 것 역시 난해한 일에 다름 아닙니다. 좋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 진정한 작가로서 산다는 것은 좀처럼 잡을 수 없고 그릴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허상의 추구일 것입니다. 예술가란 결국 그런 허명에 자족하고자 하는 이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업이 참 좋다”라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문득 생을 건 것입니다.
문득 지난 시간의 흔적을 우리 몸, 우리 영혼에 새겨온 먼 곳의 햇빛과 바람과 구름의 자취를 은밀히 들여다봅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두 가지 상반된 꿈을 마음속에 품어 왔습니다.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꿈과 미지의 세계를 향해 훌쩍 떠나고자 하는 꿈입니다. 전자가 없다면 계속되는 방랑과 방황에 지쳐 길을 잃게 될 지도 모르며, 후자가 없다면 현실에 안주한 채 무기력한 삶을 지속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고향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노스텔지어는 각기 구심력과 원심력이 되어 우리 삶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갤러리 지오(Gallery GO)가 개관을 한 지도 4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서 인천 문화예술의 주춧돌이 되고자 출발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문화융성에 부흥하여 아름다운 문화가 숨 쉬는 공간으로 또한 시각문화의 밑거름이 되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바쁘신 가운데도 작품을 출품해주신 선정 작가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인천 미술에 대한 애정으로 부디 방문하시어 질정(叱正)의 말씀을 당부 드립니다.
2018년 7월 21일 갤러리지오 관장 고 진 오 드림
김연옥作, 겹 Acrylic on canvas 2018 45.5x48.5cm 2018-4
김정현作, 어린왕자가 있는 풍경브론즈,2018,50,30,80cm]
오! 인천, 그 원더랜드에서 보여지는 한국 미술의 왕성한 활력
김정환(미술평론, 갤러리지오 수석큐레이터)
최근 미술시장이 침체되면서, 국내 미술계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적지 않은 분량의 창작물들이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발표되고 있는 진경은 놀랄 만한 것이다. 다기한 작품들이 각각의 탄력으로 솟구치고 또 세계를 뜨겁게 껴안는 모습은 아무리 우리 시대가 무잡하다 하더라도 무릇 작가의 창작을 향한 에너지는 앞으로도 결코 고갈되거나 훼손되지 않을 것임을 더욱 신뢰하게 된다. 한편으로 국내에서 인천처럼 미술의 저변이 넓고 왕성한 활력을 갖고 있는 도시가 또 있을까 싶게 참으로 희유해 보인다.
항구도시는 외부를 향해 뻗어나가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수탈과 침략의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있어 인천은 참으로 굴곡진 역사를 겪어야만 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신식 문물이 들어오면서 인천이 서양열강과 우리나라를 잇는 일종의 관문역할을 한 다. 그 중요성에 서구 열강 등이 앞 다투어 인천을 주목했다. 21세기 들어 인천의 발전은 실로 놀랍고 눈부시다. 국제도시의 위상아래 여러 가지 진통은 있으나 그 속에서도 무한 성장을 이뤄가고 있다.
김정환作, 묵음18-02-18(45.5x38)
박상희作, 양복점27.3x22cm, Acrylic on canvas, Vynil sheet cutting, 2014
박인우作, 1450일탈의꿈(117-91cm,oil on canvas, 2015)
다양한 의미에서 인천은 ‘원더랜드’다. 단어 뜻 그대로 외부인이 볼 때는 항구도시 특유의 그 무엇인가가 있기에 ‘기이하고도 이상하게’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살아보면 ‘굉장히 좋은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과학저술가이자 미디어 전문가인 스티븐 존슨(Steven Johnson) 동명인 그의 책 <원더랜드>에서 놀이와 재미가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꿔왔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대량 소비사회의 시작이 된 백화점도 지금의 테마파크와 같은 원더랜드로 시작했고, 이후 정가제와 신용결제 서비스 도입에 힘입어 초대형 쇼핑몰과 도시 발전의 매개체가 됐다. 영화, 컴퓨터와 인공지능, 로봇의 탄생 역시 거슬러 올라가면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려는 도전이 있었다. 재미는 인류의 삶을 바꾼 위대한 아이디어를 낳았다. 그동안 우리는 놀이와 즐거움의 가치를 과소평가했다. 이는 현대예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천을 주요 무대로 활동하는 다양한 분야의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인천 미술의 오늘과 내일을 전망해 보고자 이 전시는 기획되었다.
작가 선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인천 출신의 작가들과 인천을 기반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검토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운영위원들은 1차적으로 50여 명의 작가들을 우선 선별했다. 그리고 꼼꼼한 작품읽기에 들어갔다. 여러 의견을 교환했고, 개인적 취향에 따라 호오가 갈렸다. 전시장 사정을 고려하고, 다시 본 전시의 취지에 맞지 않는 작가를 제외하였다. 거듭 숙려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26명의 작가를 선정하는데 흔쾌히 합의하였다.
안명혜作, 117X91cm
이계원作, Allotropism(同質異形) acrylic on canvas-board & pinewood, 91.1x116.7cm
조명식작, 출품작Field-to will and to act ,130.5x130.5cm,oil,2018
선발된 강상중, 김성희, 김연옥, 김정연, 김진희, 도지성, 박인우, 이의재, 이용철 등 작가의 작품에서는 농익은 성찰과 조형 언어로 인천 미술과 더 나아가 한국 미술의 영역을 시공간 모두에서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가들이 기왕에 보여주었단 출중한 예술적 실천의 성취뿐만 아니라 여전한 창작력은 깊은 존경의 마음을 갖게 한다. 문수만, 안명혜, 염현진, 유태수, 이강화, 이계원, 조명식, 최성철 등 작가들의 작품들은 그들의 조형세계의 변모를 다소 보여주면서도, 우리 시대의 다양한 모습들을 드러내고 특유의 섬세한 시선으로 삶을 명징하게 간파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김유정, 박동진, 박상희, 박정선, 양승수, 이소영, 최명자 등의 비교적 젊은 작가들은 때로는 환몽을, 때로는 격정적인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지만 독특한 발화체계가 완성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번에 선정된 작가들은 인천 미술과 한국 미술의 여러 가능성을 완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최성철作 , Apple of Parisinstallation스텐레스 스틸위에 채색2009
한 시대에 창작되는 미술 작품들은 너무나 다종해서 하나의 흐름을 이루지는 않는다. 그들은 다성적이며 예고 없이 출현할 뿐이다. 그리하여 한 시대의 작품들을 꿰뚫어 통찰하려는 시도는 난경에 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이 강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보았다. 인천에서 양산되는 대표적인 작품들을 보면서 작가 저 마다의, 그 각각의 꽃핌을 보게 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순간 그 각각의 꽃핌이 역동적인 결합을 이루면서 인천 미술을 한 번 더 크게 꿈틀거리게 하고 있음을 행복하게 보게 되리라. 그 행복한 경험을 즐기면서, 훗날 이들 중에서 누가 인천 미술을 더욱 빛낼 걸출한 작가로 성장할지 조용히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