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지금’의 추상성-박성배의 ‘고목’ 사진전
지금, 여기에 있는 것처럼 구체적인 것은 없다. 그것만이 정말 있는 것이요, 나머지 것들은 이차적인 것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박성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고목은 가장 구체적인 실재이다. 내 눈앞에 지금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라는 장소적 구체성도 ‘지금’이라는 시간적 순간성도 그리 자명한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것도 아니다.
천연기념물 제165호 괴산 읍내리 은행나무-1(70X46)
천연기념물 제233호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4(75X150)
여기라는 공간성이 연장성이 없다면 성립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이라는 시간성도 연속성이 없다면 어찌 성립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박성배의 고목은 단순히 어느 지점을 점유하여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구체적인 실재가 아니다.
천연기념물 제59호 성균관 문묘 은행나무(100X100)
천연기념물 제76호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2(100X100)
언제부터 일지 모를 오랜 인고의 세월을 제 안에 품고서 제 뿌리보다 더 넓게 보이지 않는 무한한 공간에 펴져 있는 존재이다.
그렇다. 이 땅에 뿌리를 두고 있되 그 뿌리가 펼쳐있는 공간만이 그의 공간이 아니다.
또한 지금 자신의 모습이 그의 참 모습이 아니라 그 긴 세월동안 보고 겪었던 이 땅의 희로애락을 제안에 품고 있는 역사이다.
성균관 문묘 회화나무(150X55)
천연기념물 제193호 청송군 관리 왕버들1(70x50)
박성배가 보여주고자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는 이 땅의 고목을 찾아 전국을 헤매면서 작업한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리라.
박성배의 이번 ‘고목’ 전은 이전의 ‘신 몽유도원도’나 ‘관념 산수’에서 추구하였던 이 땅의 정기를 찾는 작업의 연장선이다.
사진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가장 고도한 추상을 찾고자 하는 작가의 노고와 함께 한다면,
그 고목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노래 가락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 종 석
천연기념물 제233호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2(100X100)
천연기념물 제280호 김제 행촌리 느티나무(100X100)
천연기념물 제493호 의령 세간리 현고수(70X50)